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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al Museums 기념 박물관

남한과 북한의 정부는 서로 한국전쟁을 기념하기 위해서 각자 박물관을 설립했다. 남한에 있는 박물관은 ‘전쟁기념관’ 이라고 하고 북한이 설립한 박물관은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이라고 한다. 전쟁기념관은 북한에서 받은 전쟁 위협을 상기 시키고 한국의 전쟁 역사을 기념하기위해서 1988년의 노태우 정부부터 구상했으며 1994년에 군 본부가 있었던 위치에서 설립됐다. (Hong, 40)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이 처음에는 1953년에 평양에서 설립됐는데 1974년때 서성구역에서 재건됐다. 한국전쟁중에서 김일성의 지도과 인민들이 용감한 면모를 보이는 전시품들을 전시한다. (“Museums” Korea-dpr.com) 두 박물관은 과거중에서 극히 일부를 수집하여 정부의 의도에 따라 역사를 재구성해서 관객에게 한국전쟁을 묘사한다. 둘이 닮은 점과 다른 점이 여러 가지 있다.

우선, 두 박물관은 명확하게 상대방이 한국전쟁을 유발했다고 주장한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서 한 부분은 남한의 침략을 묘사하는 증거를 전시한다. 그리고 박물관 가이드까지 한국전쟁의 시작과 과정을 직접 관객에게 설명한다. (Ah6hy) 가이드들은 평생동안 북한이 일본에서 해방한지 오래 안 돼서 전쟁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남한과 미국이 한국전쟁을 시작했다고 배웠다. 그래서 가이드들은 이 미듬을 의심하지 않고 확신하게 관객에게 전달한다. (Yoon, 8 Jan 2014) 더욱이, 전쟁기념관은 북한을 ‘우리’로 분류하지 않고 ‘반민족’으로 부르며 북한을 비하한다. (Hong, 46) 더욱이 두 박물관도 비슷하게 돔형태의  전시회장을 통해서 전쟁에서 죽은 조상들을 기념한다. 전쟁기념관에 들어 가자마자 돔의 정점에서 파란 빛줄기가 그릇에 투영되는 전시품을 볼 수 있다 (Fig 1). 이 전시품은 조상을 모시는 제단으로 여겨진다. (Hong, 42) 마찬가지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은 제단 대신에 360도 회전하는 디오라마 모형을 통해서 몇 가지 전쟁 장면을 재현한다 (Fig 2). 모형에서 조상들의 용기와 당시의 사상에 대해 강조한다. 돔의 정점에서 파란 광선 대신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상징하는 붉은 별이 빛난다. 관객들이 이런 돔을 통해서 조상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들의 희생을 알게된다면 그 나라의 고통과 피해자 위치도 알게되기 때문에 두 전시품은 남한과 북한 정부가 자신의 피해자 위치를 굳히는 여러 방법 중의 하나다. 또한, 두 박물관도 나라의 미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예를 들면, 전쟁기념관이 결혼식 시설을 제공하는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 즉 나라의 미래를 위한 희생은 가치가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입구에서 풍선을 들고 있는 아이들을 그린 큰 벽화가 있다 (Fig 3). 희망을 상징하는 풍선과 아이는 나라의 미래를 관련시킨다. 여러 방법으로 죽은 조상과 미래를 연결해서 나라가 밝은 장래가 있으며 이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전쟁을 불가피하게 했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두 박물관 사이의 비슷한 점이 여러가지 있지만, 다른 점도 많다. 먼저, 전쟁기념관이 한국전쟁은 한국의 내전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이 한국전쟁은 한국과 미국 사이의 전쟁으로 서술한다. (White, 516) 게다가, 두 박물관이 전쟁 시기에 도와준 국외자들에 대한 해석에 도 차이가 난다. 한편으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의 가이드는 중국의 도움을 인정하지만 소련을 언급하는 전시품은 전혀 없다. 가이드가 이 박물관은 한국 혁명에 바치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 관련 없다고 설명한다. (White, 516) 반면에, 전쟁기념관은 한국전쟁에서 미국과 국제연합의 도움을 자세하게 기록하며 국제 군인들을 위한 기념비를 설립했다. (Hong, 48) 그렇지만, 미국과 국제연합은 남한이 오랫동안 북한을 방어한 후에야 전쟁에 참여해서 도와줬다고 설명하고 미군을 주로 의료지원과 같은 후방 지원 업무와 연상시킨다. (Hong, 47) 이렇게 하면 외국에 대한 의존을 최소화되는 동시에 외국은 남한의 방어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도와주려고 왔는 것 아니라 한국전쟁은 남한 위주로 자유세계를 지키기 위해 여러 나라가 합력해서 공산주의와 한 전투를 뜻하게된다. 두 기념관이 한국전쟁에 대한 관념이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자신을 무고한 위치에 둔다. 권력등에 비해서 더 좋은 세계과 미래를 만들도록 공산주의와 제국주의로 부터 상대방을 해방시키는 것이 한국전쟁의 목표였다고 사람에게 해명한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차이점은 두 박물관이 기념하는 대상이 다르다. 전쟁 기념관이 전쟁에서 죽은 군인들을 기념하는 목적은 분명하다. 기념비를 통해서 사망 숫자를 관객에게 보여주고 자신 나라의 피해자 위치를 굳히면서 군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남한과 달리,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은 군인 대신에 김일성의 지도력을 강조한다. 여러 전시하는 그림은 김일성이 전투를 계획하고 지도하고 있으며 군인들을 이끄는 장면을 표현한다. 게다가, 사망 숫자에 대한 기록이 없지만, 대신에 미국 군인들이 남은 다량의 장비들을 전시한다. 이렇게 하여, 미국의 잔학 행위를 관객에게 입증하면서 자신을 피해자 위치에 둔다. 공격을 받았지만, 김일성의 우월한 지도력 덕분에 국민들이 평화를 얻을 수 있었고 제국주의에 패배하지 않기 위해 한국전쟁을 한다는 뜻을 사람에게 전달한다.

 

 

더욱이, 전쟁기념관은 남성성을 강조한다. 셀리아 미요시 제거의 분석에 의하면, 남한은 군사, 남성성, 민족주의를 연결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고 남한의 가부장 사회도 남성위주라고 지적했다. (Hong, 50) 남한과 달리, 조국해방전쟁승리 기념관은 전쟁 시기의 여성을 묘사하는 전시품이 많다. 여러 조각상은 여성들이 아기를 몸으로 지키면서 적군에게 굴하지 않은 모습을 표현한다 (Fig 4). 또 다른 벽화에 전쟁동안 도망치는 장면에서 여성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위로 전진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Fig 5). 입구에 있는 큰 벽화는 마찬가지로 여성들을 포함했다 (Fig 3). 그래서, 국민들이 김일성의 지도를 따라서 더 좋은 미래를 향해 전진한다는 이념은 조국해방전쟁승리 기념관의 중심이다. 두 기념관은 차이점이 많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은 불가피하게 전쟁을 했는 것을 보여주고 자신은 무고한 피해자 위치였다는 이미지를 굳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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