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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War 한국전쟁

한국전쟁은 1950년 6월25일부터 1953년 7월27일까지 한국에서 생긴 내전이다. 실제적인 전쟁은 1950년에 시작됐지만, 1946년부터 남한에서 북한의 공격을 주의하라는 경고가 이미 많았고 한국에서 뛰어난 인물들이 나라를 재통합하기 위해서 전쟁을 고려했다고 하는 증거도 있다. (Portal, 47) 1948년에 남한은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으로 수립했고 북한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수립됐다. 두 정부의 형태와 정치 체제는 뚜렷하게 다르기 때문에 격차가 늘 수 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어느 편이 한국전쟁을 시작했는지도 대조하게 다른 견해가 있다.

 

수년 동안 이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논란이 생겼다. 그중에는 소비에트 연방이 사회주의 세계를 확장하기 위해 전쟁을 유발했다고 믿는 견해도 있으며 김일성의 야심을 주요 원인으로 주장하거나 이승만이 북한을 먼저 도발해서 공격을 받았다는 견해도 있다. (Robinson, 115)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을 포함하여 대부분은 북한이 남한을 공격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북한은 남한이 먼저 공격하여 한국전쟁을 유발했다고 확신한다. 북한의 자료에 따르면 남한이 6월23일부터 북한 지역을 포격했으며 해주시가 함락됐다고 지적한다. (Portal, 49) 북한에서 이 전쟁은 ‘조국해방전쟁’ 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한국 민족과 미국 사이의 갈등이라고 여겨진다. (White, 516) 그래서, 북한이 전쟁을 응전한 목표는 자신 나라를 방어할 뿐만 아니라 ‘탐욕스러운’ 미국의 제국주의에서 남한을 구하고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Kim Suk-Yong, 201) 그렇기는 하지만, 누가 어떤 원인으로 한국전쟁을 유발했더라도 전쟁 시작했을 때 북한이 충분히 준비를 갖춘 것은 사실이다. 1947년에 중국에서 내전이 생겼을 때 김일성이 공산주의인 인접 국가와의 안전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마오쩌둥에게 원조를 제공했다. 이 전쟁으로 북한 군대의 전투 능력이 올라됐으며 한국전쟁에서도 중국에서 지원을 받았다. 동시에, 러시아에서도 탱크나 총과 같은 물자를 받으며 남한에 총공격을 개시하기 위해 충분한 준비를 한 것은 사실이다. (Portal, 47; Robinson, 114-115) 군사를 중시하는 북한과 달리, 남한은 상업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다. 그때문에, 그때 남한은 북한 군대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고 북한은 이틀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이 상황에서, 미국은 공산주의가 확장되지 않도록 하기위해 한국전쟁에 개입했다. 국제연합과 함께 대규모로 역습하고 미국은 폭격 작전으로 북한을 부수어 평지로 만들었다. 이 사건은 북한 사람에게 여전히 선명하며 고통스럽고 미국에 대한 불신감을 일으킨 주요 원인이다. (Robinson, 119)

 

결국에 1950년 전의 국경선과 비슷한 위치에서 DMZ를 설정했다. DMZ는 비무장 지대이기는 하지만 한국 사람에게 가족과 나라의 단절이나 돌이킬 수 없는 기억, 그리고 침략과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상징한다. 1953년에 공식적인 휴전협정에 의해 총 삼년의 내전을 중지했다. (Robinson, 115-119) 남한과 북한은 둘다 파괴되고 정신적인 외상까지 남았다. 삼년의 내전으로 상처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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